어떤 일이든 꾸준히 하기란 어렵습니다. 설령 나에게 이롭거나 꼭 필요한 일이라도 말이죠. 하지만 더 쉽게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루틴'입니다. 일상 속 루틴은 중요한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게 해주어, 우리가 그 일을 꾸준히 해나갈 수 있도록 돕습니다.
예술가들 역시 일상의 루틴을 통해 규칙적으로 작업하여 자신의 재능을 꾸준히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영감의 순간을 성실하게 ‘찾아 간’ 것이죠. 거창한 미래 계획보다는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살아내고, 매일의 노력이 모여 위대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연출가로 계속 살아가는 것은 연극 연출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같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결국 연극을 통해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남아서겠죠.
현실적인 문제나 창작자로서의 고충이 그를 초록빛 나라로 데려갈지 현재로선 불명확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다만, 끝없는 창작의 여정을 가장 즐거이 버틸 힘이 험난한 여정 안에 존재함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가 정의한 초록빛 나라가 유토피아나 율도국 같은 허무맹랑한 허상일지도 모르지만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것을 쫓는 것이 창의이자 창작이니깐요.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며 살아갑니다. 예를 들어, 오늘 하루도 가치 있는 존재임을 증명하기 위해 출근과 같은 반복적인 행위를 할 테고요. 혼자만 보기 위해 쓰는 일기도 사실은 스스로 존재를 확인하는 하나의 행위입니다. 오늘의 증명이 끝나면, 내일 또 다른 증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한 멈추지 않는 이 고단한 증명의 연속은 언제 끝이 날까요? 그 끝에는 어떤 보상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카뮈는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상황에서도 그 운명의 주체가 되어, 의미와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를 목적으로 삼으라고 말합니다. 비록 삶이 죽음으로 끝나더라도, 그 순간의 감각과 경험에 집중하면, 바로 그곳에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위 세 점의 작품 및 프로젝트는 이미 소멸과 끝이 정해져 있지만, 그 결말보다는 지속되는 과정에서 의미를 찾게 합니다. 마치 이 시대의 모든 시지프들에게 건네는 질문이자 성찰처럼 말이죠.